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래리 레인즈 (문단 편집) == 현역 시절 == [[시카고]]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, 1953년 [[한큐 브레이브스]]에 입단하면서 프로에 입문했다. 공, 수, 주 3박자를 갖춘 내야수로 호평을 받았으며, 데뷔 첫 해인 1953년 '''61[[도루]]'''로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하고[* 일본 프로야구 역사에서 외국인 도루왕은 레인즈와 더불어 1958~1960년 3시즌 연속 도루왕을 차지한 [[로베르토 바르본]], 단 두 명 뿐이다.] 개막 첫 경기부터 20경기 연속 안타로 개막 후 최다 연속 안타 경기를 기록하는 등[* 이 기록은 1997년 [[한신 타이거즈]]의 [[와다 유타카]]가 24경기로 경신했다.] 맹 활약을 보였다. 특히 그 해 레인즈가 기록한 3루타 16개는 아직까지도 [[퍼시픽 리그]] 개인 시즌 최다 기록이자 [[NPB]] 전체 2위의 기록이다.[* 시즌 최다 3루타의 [[일본프로야구|일본]] 최다 기록이자 [[센트럴 리그]] 기록은 1951년 [[오사카 타이거즈]]의 [[가네다 마사야스]]가 수립한 '''18개'''이다.] 또한 그 해 [[올스타 게임]] 에도 출장하는 등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. 이듬해인 1954년 시즌에는 2년 연속 [[올스타 게임]] 출전을 달성하고 '''137경기 출장, 184안타, 18홈런, 96타점, 96득점, 45도루, 타율 0.337'''로 타격 1위, 그것도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외국인 선수 타격왕을 획득하는 등 호타 준족을 마음껏 선보였으며 [[유격수]] 부문 [[베스트 나인]]에도 선정되면서 최고의 한 해를 구가했다. [[파일:raines_MLB.jpg]] [[클리블랜드 가디언스|클리블랜드]] 시절의 레인즈. 1954년 시즌 종료 후 레인즈는 [[메이저 리그 베이스볼|메이저리그]]에 도전하기 위해 한큐에서 퇴단했고, 1955년 [[클리블랜드 가디언스|클리블랜드 인디언스]]와 마이너 계약을 맺고 입단하여 1957년 시즌 중 빅 리그로 승격, 1번 타자로 96경기 출장에 타율 0.262로 [[나름]] 활약을 보였다.[* 하지만 주특기이던 도루는 5개에 그쳤다.] 그러나 1958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다시 마이너리그로 강등, 그 해 9월 잠깐 빅 리그로 복귀하여 7경기에 출장한 것 외에는 두 번 다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 못했다. 1962년 일본으로 돌아와 한큐에 재입단 했지만, 73경기 출장에 55안타, 5홈런, 27타점, 8도루, 타율 0.252라는 평범 이하의 성적만 남긴 채 정규 시즌이 끝나기도 전인 그해 9월 구단으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고 유니폼을 벗었다. 그것으로 레인즈의 현역 생활에는 종지부가 찍혔다. [[NPB]] 3시즌 통산 '''330경기 출장, 383안타, 31홈런, 172타점, 209득점, 114도루, 타율 0.302'''를 기록했으며, 타격왕과 도루왕, [[베스트 나인]]을 각 1회 수상했다. [[MLB]] 2시즌 기록은 '''103경기 출장, 64안타, 2홈런, 16타점, 40득점, 5도루, 타율 0.253'''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